금사디미 이야기
제가 그동안 올린 사연 중에 금사디미 이야기가 종종 거론이 되어
궁금해 하시분 분들이 많아 아예 방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뭐..그리 많은 자료가 있음도 아니고
자랑할 것도 없지만 제 이야기 대부분은 금사디미와 연결 되어 있는 부분이 많아서
서로 소통 하는 의미로 자리를 마련 하였습니다.
우리네 나이 쯤이면 누구나 가슴속에 아련한 추억들이 있을거에요
저도 그 중에 한 사람이구요
그리고 제 가슴속에는 아련하다 못해 아프고 슬픈...그렇지만 잊을수 없는
그곳..내고향 금사디미 입니다.
인터넷에 금사디라고 치면 제가 쓴 글만 수두룩 하게 검색이 될 만치
잠시의 짜투리 시간만 나도 금사디미를 그리워 합니다.
여기서 금사디미란
제가 태어나고 유년시절을 보냈던 작은 시골 마을을 말합니다.
사촌 오빠들의 믿을수 있는 증언에 따르면
저는 흙먼지가 뽀얗게 일어나는 마당을 기어 다녔고
마당에 나뒹구는 닭똥을 주워 먹기도 했다며 놀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느날 따지길
= 아니 오라비들이 어찌 아까운 동생이 닭똥 주워 먹는걸 보고만 계셨디야!!=
하고 뎀볐더만 그 뒤론 그 놀림을 전혀 안하신 다는 사실
ㅎㅎㅎ
마을 어귀 산허리를 휘감고 흐르던 작은 시냇물...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금빛 모래들...
우린 그곳을 금사디미라 합니다.
무슨면 무슨리 이런 주소가 붙기 전 그 마을은 금사디미라 불려 졌다고 합니다.
같은 성씨들이 집단을 이루며 수십가구가 살았고
우리 마을 금사디미와 건너 마을 이주먹 과의 사이에 흐르는 시냇물은
비만 오면 떠내려 가는 통나무 다리 때문에 양쪽 마을이 제법 자주 다리를 놓곤 했었죠
해질녁 이면 햇살을 받아 한폭의 그림보다 더 아름다운 물 위를 물고기 들이 뛰어 오르며
그들의 호흡을 도왔으며
지금처럼 그들이 그 시간이면 왜 뛰어 오르는지를 알지 못하여
그 몸짓이 궁금하기만 했었죠
지금은..
대부분 빈 집이고..나이드신 분들만이 수두룩한 금사디미..
그 아름답든 전경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도시도 아니고 시골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으로 변해 버린 그곳...금사디미..
마을 들어 가는 덕천재를 조금 지나면 아버지가 누워 계시고..
그 곁에 어머니는 한줌의 재가 되어 흩뿌려 진 ...
생각만 해도 그립지만..가슴이 먹먹해 오고..수많은 시간을 거슬러 한달음에 모든것을
들다 볼수 있는 그 단어..금사디미...
그토록 절절한 아픔이 어찌하여 그리움으로 변할수 있는지..
단발머리 바보스런 여자아이 하나가 아직도 빈 들판에 허수아비 처럼 휘청거리며
방황 하고 있는 그곳을 아마도..아마도..죽기전에는 못잊을 겁니다..
금사디미..그곳은
내 문학의 산실 이기도
내 삶의 부분중 가장 아프고 힘들고 고단하며..엉켜버린 실타래를 켜켜이 안고 있는듯 한데
아직도 더러 꿈을 꾸면..
그 바보스러운 여자 아이는 감꽃을 줍고..감자 껍질을 놋 숟가락으로 벗기고 있습니다..
꿈에서 깨어나면..눈을 뜨지 않고도 눈물이 흐르며
무엇이 내게서 떠나 버린듯...한없이 공허하기만 합니다..
ㅎㅎㅎ
제 눈가는 아까 부터 더운 기운이 가득 합니다..
그만 글을 접어야 겠어요..
내일은 공휴일이지만 삼일절이라 일찍 일어 나서 태극기 달아야 합니다.
친구도 점심 시간 무렵 개봉역까지 온다고 했구요
차츰..자료들을 찾아가며
금사디미 이야기를 계속 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십시요.
2011/ 2/ 28 일 이라 하지만. 시간은 자정을 넘어 3/ 1 일이 되어 버린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