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향 2011. 6. 23. 10:08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맑았던 날이 잘 기억 나지 않습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비가 내렸던것만 같습니다.

눅눅함도 집안 가득 찼으며 빨래는 마르지를 않습니다.

살짝 열린 창문으로 먼 높이에서 여객기 지나가는 소리가 빗소리와 섞여 들려 옵니다.

 

지난 6월 19일은 생일이였습니다.

남편이 맛난거 나가서 먹자는걸 그냥 집에서

간단하게 먹자고 했더니 그럼 고기 구워 먹자고 해서

마트를 다녀 오니 아이들이 케익을 사다 두었습니다.

생일 케익에는 나이 만큼 초가 들어 있었으며

아이들은  그 초를 다 꽃아 두고 촛불에 불을 피우려고 할때에

 

말숙이 = 잠깐 ~ 초 하나만 빼자 큰 초 하나 빼면 엄마 열살 젊어 지잖아 =

 

남편 =  오~ 굿 아이디어~그래 큰거 하나 빼 아니지 두개 뺄까? ㅋㅋㅋ=

 

우린 그렇게 초 큰것을 하나 빼고 촛불을 켰습니다

나이 라는것.. 세월이라는것..

발자국도 없으며  형체도 없어  본적도 없는데 우리는 그 세월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지금.

모두가 출근을 하고 등교를 하고 갑자기  텅~~~빈 공간에 혼자 남아

추적 거리는 빗소리를 듣노라니

 

= 내가 언제 이 만큼 나이가 들어 엄마가 되고 주부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지나면 추석이 되고 시간이 지나면 생일이 되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서 엄마가 되고 주부가 되었을까요.....?

저는 금사디미 시절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그 시절엔 저도 작은 소녀 였었고

떨어진 감꽃을 주워 실에 꿰어 송아지 목에 걸어 주었다가

어머니께 혼쭐이 난 시절도 있었습니다.

세월이 빠른  지름길을 걸어 이만큼 오기전에는  저도  단발머리 찰랑 거리며

키다리 아저씨에 등장 인물인 저비스를 연모하며

캔디에 나오는 안소니가 말을 타다가 낙마로 죽었을때는 크게 휴유증을 앓기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는 연습 없이 세월을 맞이하고 보내고

나이가 들어 갑니다.

유년기를 지나 청소년기를 마치고 사랑을 하며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우린 아무것도 연습하지 못햇습니다.

사랑이란 것이 얼마나 큰 책임감을 요구하는지

가정이란것이 서로에게 얼마나 많은 인내와 절제를 요구 하는지

연습한 적이 없습니다..

그 모든것이 서툴고 낯설기에  아파하며 슬퍼하며 버둥거리며 살았습니다.

사랑이란것이 인내며 철저한 자기 절제란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우린 무엇을 선택 했을가요..?

그래도 사랑을 선택 해야겠죠?

 

비 탓인지 아니면 건강 탓인지

생각이 많은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전 비서관님이 운명 이란 책을 펴내면서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을 노심초사형 이라고 말한적이 있는데

지금 제 심리상태가 그 노심초사 라는 표현이 딱 맞을듯 합니다.

문재인님과 같은 맥락의 노심초사는 아닌

주부로서 엄마로서..또 한 여자로의 단순히 평범하지만

스스로는 심각한 노심초사형입니다.

비가 그치고 맑고 쾌청해지면 마음이 좀 안정이 되고 좋아지리라 기대해 봅니다.

 

2011 /6 /23 장대비가 쏱아져 내리는 오전을 지나며